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J2M 라이덴 (문단 편집) == 특징과 활동 == 원래는 극단적인 경량격투전 설계의 한계가 드러난 제로센의 문제 및 42~43년의 격전을 거치며 항모기동부대 전력이 고갈되고 전세가 일본군의 수세로 바뀐 것에 대응해 미츠비시는 제로센을 단종시키고[* 당장 전선에서 필요한 제로센은 나카지마가 생산, 실제로도 나카지마는 이미 일본군 내부에서도 구형화된 21형을 44년까지 생산했다.]신형 제공/방공전투기로 라이덴의 생산에 집중할 예정이었지만 상술한 대로 개발이 계속 늦어진데다 전투기로는 성능이 더 우수한 시덴카이가 등장하면서 주력 전투기로는 입지를 잃고 총계 621기만 생산, 폭격기 요격용 국지전투기로 쓰이게 된다. 자사의 폭격기용 엔진[* 라이덴에 달린 미츠비시 카세이 엔진은 뇌격기인 [[텐잔]]이나 쌍발 폭격기인 [[G4M|1식 육상공격기]]등에 사용되었다]을 장착하여 동체에 비해 엔진 크기가 매우 컸다는 점이 쇼키와의 공통점이라면, 후부 동체를 최대한 잘록하게 설계한 쇼키와는 달리 전체적으로 [[시가(담배)|시가]]형 동체를 구성하여 유선형으로 만든 것이 큰 차이점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군 폭격기 요격을 중점으로 설계하여 과급기를 개량해가며 고고도 성능을 개선시킨 기체이기에 [[B-29]] 요격전에서 쓸만한 기종 중 하나였으나, 초기형은 조종사의 시야가 제한되며[* 다만 미군 측 보고서에서는 라이덴의 시야에 대해 딱히 불평하지 않았다. 또한 시야 문제는 테스트 파일럿이 시험생산형 라이덴을 타며 지적했던 문제로, 이후 생산형에선 조종석 주변의 유리창 프레임이 교체되었다.] 당시 폭격, 물자부족을 통한 생산설비의 악화로 인해 랜딩기어 유압계통에 불량이 많았다고 한다.[* 이쪽은 당시 일본에서 생산되던 딴 전투기들의 사정도 대부분 마찬가지였고 같은 주축국인 독일 또한 전쟁말 전략폭격으로 불량이나 기준 미달품들을 많이 생산했다.] 애초에 쇼키와 마찬가지로 익면하중이 높은 전형적인 붐 앤 줌 고속기였기 때문에 [[사카이 사부로]]는 라이덴을 '''트럭 같다'''고 표현하기까지 했다. 다만 여기서 유의해야할게, 말이 "트럭"이지, 라이덴의 기동성은 세계적으로는 평균 이상이고, 오히려 일본의 선회력 기준이 매우 깐깐하다는 점이다. 또한 라이덴의 설계자인 호리코시 [[기사]]는 국지전투기라고 해서 기동에 신경을 안쓰면 상부에서 불만족스러워할 것 같다고 판단하여 기동성도 어느 정도 갖추도록 설계하였기에, 생각보다 그렇게 기동이 안좋은 건 아니었다. 또한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게 사부로는 당시 선회등 기동성으로는 최상위권이던 제로만을 주력으로 주구장창 탔던 사람이라는 것이다. 단순히 수치상으로 비교해도 초기형 제로센인 A6M2의 익면하중은 107.89kg/m²로 175kg/m²에 다다르는 라이덴이 훨씬 둔하다고 느낄 수 밖에 없다.[* 참고로 일본 해군의 악몽이었던 [[F6F 헬캣]]의 익면하중이 184 kg/m²이었다. 물론 1,800마력 엔진을 장착한 라이덴과 2,200마력 엔진을 장착한 헬캣의 선회력을 단순히 비교 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라이덴은 제로 등의 일반적인 일본군의 제공전투기보다 기골이 매우 탄탄한데다 폭격기에 사용되던 카세이 엔진의 강력한 출력 덕분에, [[붐앤줌]]을 선호하는 파일럿들은 라이덴을 꽤 좋은 기체라고 평했다. 다만 객관적으로는 라이덴의 기골은 크게 튼튼하지는 않은 편이다. 라이덴 또한 제로센과 마찬가지로 강하시 속력을 크게 제한해야 했다. 물론 초기형 [[제로센]]과 같은 근본적으로 기골이 허약한 기종에 비해 기골 강도가 좋아지긴 했지만 740.8km/h라는 제한 속도는 A6M5와 같은 후기형 제로센 수준의 속도제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기형 제로센의 기골 강도가 강화된 후기형조차도 일본 파일럿들이 믿지 않을 정도로 좋지 않았던 걸 봐서는 처음부터 (일본 기준으로) 괜찮은 강도를 가진 라이덴의 기골이 튼튼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여담으로 1942년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던 일본 해군이 [[대만]]에서 성적이 우수한 12~19세의 소년공을 "중등교육을 받게 해주고, 의식주 공짜에 졸업시엔 기사가 될 수 있다"라는 조건으로 약 8400명 가량을 모집해, 소년공들은 코자해군공창에서 10000명이 넘는 일본인 직원들과 함께 라이덴을 만들며 일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라이덴에 탑승하여 시운전을 하다 불량으로 라이덴이 추락한적이 있었는데, 당시 테스트 파일럿이었던 모리 마스키 병조는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했으나 머리와 다리에 경상을 입었다고 한다. 이후 목발을 지고 화를 내려고 갔는데, 소문대로 정말 아이들만 있어서 그냥 웃으며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고. [[N1K-J 시덴|N1K2-J 시덴카이]]가 양산되면서 라이덴의 입지가 완전히 사라지나 싶었지만 시덴카이보다 라이덴의 고고도 요격 성능이 더 좋다고 일본군 상부에서 판단한 결과, 라이덴은 종전 때까지 생산되어 운용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